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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들…  |  19-09-07  |  42,320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9월1일부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황토현을 떠나 칠보면 무성서원으로 배치되어 해설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9월 1일에 첫 황토현 근무일로부터 만 17년이 되었네요.
농민군에서, 반동학 세력으로 농민군을 탄압했던 유림과 양반의 무대인 서원에서 일하게 되어, 신분 상승 되었다고 하는데, 그리 기쁘지는 않네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고 누가 말했다지만, 이 동학의 노병은 몸은 동학에서 떠나더라도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영원한 동학농민혁명군”으로 동학의 동지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을사늑약 후 1906년, 무성서원에서 창의한 병오 의병 영수 최 면암, 임병찬은 항일 애국의 길을 걸었지만, 그 12년 전 이 땅에서 왜적을 몰아내자고 일어난 백만 농민혁명군을 역적으로 단죄하는 안타까운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설해야 할까?
양쪽 모두 다 애국의 표상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애국의 방법은 전혀 달랐던 것.
무성서원 병오창의기적비 앞에서 우리 근대사의 뼈아픈 역사, 위대한 역사를 해설하면서 찹찹한 심경 금할 수 없네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적했던 이곳 무성서원을 찾는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공자가 살아와도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며 흥선대원군은, 1871년 전국 유림들이 들고 일어나, 분서갱유의 진시왕이라고 비난하는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백성에 군림하고 수탈을 자행했던 600여 개 서원을 철폐하고 전국 47개 서원만 존치 했는데 그중 하나가 무성서원으로, 세계유산이 된 것은 우리 정읍의 자긍심이 아닐 수 없군요.
무성서원에도 답사 한번 오시기 바랍니다.
유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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