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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정식(正植) 자는 화중(華仲, 化中) 호는 초산(楚山) 본관은 밀양으로 1861년 6월 22일 정읍 과교리(현 정읍시 과교동)에서 아버지 손호열(孫浩烈)과 어머니 평강(平康) 채(蔡)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임진란에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왕조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긴 태인 출신 한계(寒溪) 손홍록(孫弘祿)의 후예이기도 하다.

동학입교의 연유는 처남 유용수와 함께 경상도 청학동으로 승지(勝地)를 찾아갔다가 때마침 경상도에서 요원의 불꽃처럼 퍼져 나가고 있던 동학에 입교하게 되었다. 입교 2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포교에 전력하였으니 처음에는 부안에서 포교하다가 그후 정읍으로 옮겨 농소동에서도 잠깐 머물렀으나 다시 입암면 신면리로 옮겼으니 관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얼마동안 음성리의 본가로 돌아왔다가 본거지를 무장현으로 옮겨 무장읍 김모(김(金某)의 집에 잠시 포교소(布敎所)를 두었다가, 다시 이웃 무장면 덕림리 양실마을로 옮겼다. 이 무렵 무장을 비롯한 전라도 서남부 지방에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선운사 도솔암 암벽불상에 검단대사(黔丹大師) 비결록(秘訣錄)을 끌어냈다는 데서 더욱 신비의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비폭력 무저항의 교단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전봉준의 혁명론에 동감하여 마침내 삼월봉기의 주역으로 전봉준과 1894년 농민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전주화약 후 나주, 장성 등지에 머물고 있었다. 전봉준이 8월경 전라관찰사의 부탁으로 나주에 내려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장성에서 손화중을 만나 전주로 동행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신병을 요양한 후 전주에 들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화중포군은 그 해 7월 나주성 싸움에서 최경선이 거느리는 농민군의 주력부대를 이루었다.
9월 봉기에도 일본군이 나주해안으로 상륙한다는 설이 있어 북상에 참가하지 않고 최경선과 같이 나주에 머물고 있었다. 11월 전봉준의 공주 패전 후 나주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태인전투를 최후로 대세가 재기불능에 이르자 11월 27일 광주에 입성했다가 12월 1일 농민군을 해산했다. 그후 그는 몸을 피하여 고창군 부안면 안현리 이모씨의 제실(祭室)에 있다가 12월 11일 제실직(祭室直)인 이봉우의 고발로 관군에 체포되어 전주감영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비화 한토막이 있다.

죽음을 같이 맹세한 전봉준 김개남이 이미 관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손화중은 실의(失意)한 나머지 제실직인 이봉우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고발하여 후한 상을 받아라. 그동안 너에게 진 은혜를 갚겠다.」
그리하여 이봉우는 관에 고발하여 후한 상을 받고 평안남도 증산 군수로 제수되었다 한다.
손화중은 서울로 압송되어 1895년 3월 30일 전봉준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향년 35세였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내 백성을 위해서 힘을 다하였는데 사형에 처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3월 29일 사형선고를 받고 전봉준, 최경선과 함께 다음날 새벽 2시 교형으로 집행된 사실이 당시 일본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의해 밝혀졌다.
손화중은 여러 혈족들이 농민혁명에 가담하여 희생자가 많았다. 손익중(손화중의 동생), 손여옥이 12월 25일 정읍에서 관군에게 처형당하였다. 손순경, 손무경, 유용수 또한 희생되었다.
이 밖에 1895년 1월 16일 체포령이 내린 사람 가운데 손덕로, 손춘익, 손치경, 손치수가 있었다. 부인 류씨는 관군에 의하여 집을 소각 당하고 네 살짜리 셋째 아들 응수(應洙)와 한 살짜리 딸을 데리고 화를 피하여 옥구(전북옥구) 지방에 가서 김씨로 변성하고 3년 동안을 지내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부하인 기포장(起泡將) 최서중(崔西仲)과 그 마부(馬夫)인 고창 우복록은 광주에서 곤장수(棍杖手) 정정칠(丁正七)은 12월 4일 손덕수와 함께 장성 북하면 용두동에서 김락주, 서상옥 등 민병들에게 붙잡혀 일본군에 의하여 장성 장터에서 효수(梟首)되었다.

손호열(孫浩烈) - 화중(華仲) - 병두(秉斗)
                                       - 성선(聖善)
                                       - 성태(聖泰, 응수) - 홍철(洪哲)
                                                                 - 홍열
                                       - 성한(聖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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