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업회자료실 가보세가보세              


이름은 병석(炳碩) 초명(初名)은 만석(萬碩) 자는 낙필(洛弼)?경선(景善)이라 불렀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895년 11월 18일 태인현 서촌면 월천리(현 정읍시 북면)에서 최성룡(崔成龍)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이름 최영창(崔永昌) 자(字) 경선(景善)이라고 했다.

그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문을 수학했다. 전봉준, 김개남과는 동향(同鄕)으로 갑오농민혁명에 있어 역할의 비중이 컸다는 것은 그가 영솔장이라는 직책과 더물어 판결문 기록에 특히 최경선을 전봉준 장군의 모사(謀士) 또는 고굉(股肱. 팔 다리)이라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전봉준과는 각별히 친근한 관계에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는 태인 사람으로 1893년 11월 고부 사발통문 대표로 참여하여 다음 해 정월 고부농민봉기를 이끌었다.

9월 봉기 후 일본군이 나주 해안에 상륙해 온다는 설(說)이 있어 손화중과 이에 대비하여 나주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전봉준이 공주, 태인에서 패전한 후 손화중과 함께 전라도 서남지방의 농민군을 소집하여 나주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11월 27일(양력 12월 23일) 광주로 입성하여 12월 1일 해산하고 남평(南平)을 거쳐 동복 벽성리에서 관군과 싸워 패하고 피체되어 담양의 일본군에게 인도되었다. 최경선은 서울에서 전봉준, 손화중 등과 함께 1895년 3월 30일 최후를 마치니 향년 37세 였다.

최성룡(崔成龍) - 병대(炳大)
                       - 병의(炳儀)
                       - 병석(炳碩. 경선) - (入代) 헌규(憲圭) - 용철(鎔哲)
                       - 병래(炳來)
                       - 병호(炳浩)